Culture/도서 리뷰

[4월] 남충식 - 기획은 2형식이다

DIALL(디올) 2021. 9. 11. 19:03

Prologue

 이 책은 사실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었다. 몇주전 회사에서 마케팅 팀장님과 기획업무를 맡아서 했던 적이 있었는데 모든게 처음이고 낯설었던 분야여서 나는 골머리를 꽤나 썩고 있었다. 농담 하나 안보태고 몇시간 내내 한문장만 썻다가 지우기를 수백번 반복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나만이 겪는 고통이 아닌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나오는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모두 나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때 팀장님께서 가여운 내게 이 책을 건네주셨다.

 평소에도 정말 많은 실무 지식들과 다양한 인사이트를 주시며 망망대해같은 스타트업 주니어 생존기(본인)에게 그저 빛과 같은 존재였기에 나는 냉큼 받아들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기획이라... 나는 평소에 "나 정도면 기획을 잘하지 않나?"라는 근거와 논리라고는 1도 없는 생각에 갇혀있었다. 아니 이 책을 읽고 갇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충식 저자님 감사합니다.) 나는 기획을 잘 하는게 아니라 그저 PPT를 잘만드는 것 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기획'이라는 단어의 원론적인 개념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Main

'기획이란 무엇인가?'

 나는 기획이란 이름이 들어간 많은 일들을 해오면서 사실 기획이 무엇인지도 잘 정의내리지 못했다. (깊이 반성한다.) 그래서 기획에 대해 탐구해보기로 했다.

 

기획의 사전적 정의

 

기획을 이해하는데 1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여기서 또 질문 그럼 계획과 기획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획과 계획

 

 기획은 무엇을 할 것인가? 즉 'What to do'의 개념이고 계획은 그 기획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즉 'How to do'의 개념인 듯 하다. 그래 무언가 꿍꿍이를 가지고 작당모의를 하는 게 기획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기획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기획의 실무를 잘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기획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기획이란, 
더 좋은 가치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는 인간 고유의 '문제의식'과 '해결본능'이 어우러진 아날로그적 사고 작업.

 

즉 기획은 현재보다 더 좋은 가치를 만들기 위한 사고 과정이다. 좀 더 자세히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현재 산재해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솔루션의 가치가 제품 또는 서비스화 되어 고객에게 판매되고 기업들은 그에 비례하여 매출이 발생한다. 즉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획은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를 만들고 그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는 아주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면 기획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기획은 2형식'

 저자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하나. 그거슨 바로 'Simple is the best'다. 여기서 책에 인용되었던 명언 한스푼이 필요할 것 같다.

"현상은 복잡하고 본질은 단순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

 

 기획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그 본질에 대한 명확한 해결을 정의내리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든 기획이 단 2개의 형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 바로 문제와 해결이다. Problem과 Solution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를 '플래닝 코드(P코드 + S코드)'라 칭한다. (이름도 잘 지었다.)

'P코드'

 문제점을 파악하고 규정하는 것은 기획의 출발점이자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떠한 가치가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저자는 P코드와 S코드의 중요도를 각각 75:25로 배분했을만큼 P코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점이 있어야 해결책도 있을 것이고 기획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에는 문제의 현상, 문제의 사실, 문제의 본질이라는 3형제가 있는데, 문제의 현상과 사실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P코드의 핵심 과제다. 쉬운 이해를 위해 책에 나온 예시를 인용해 보겠다.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문제의 현상 :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

문제의 사실 :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 : 물이 부족하다.

 이렇게 정의내려볼 수 있겠다. 문제로 인해 발생된 상황은 문제의 현상인 것이고, 비가 오지 않은 것은 문제라기 보다 제약조건 즉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물이 부족한 것이다. 즉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 이제 S코드는 쉽다. 물을 어떻게 공급할지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의 3형식

'S코드'

 문제 규정이 과정이라면 해결책은 결과다. P코드가 명확히 규정지어졌다면 S코드는 그만큼 수월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S코드의 핵심을 낯섦과 공감이라는 2가지 코드로 정리했다.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 살짝 낯설면서 공감이 가는 것이 S코드의 키포인트인 것이다. 일예로 꼬꼬면을 볼 수 있다. '라면'이라는 공감요소와 '하얀국물'이라는 낯섦요소가 절묘한 조합을 만들어내 히트 상품이 될 수 있었다. 기획의 고수들은 이 두가지 코드의 균형점을 기가막히게 찾아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낯섦과 공감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기서 낯섦은 문제 규정 즉 P코드 자체가 새롭고 낯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 코드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를 때 낯섦코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감코드를 간과하 채 새로움만이 목표가 되다면 진정한 새로움이 창조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발상'하는 것이 아닌 공감되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것.

 이 구절에서 나는 저자의 명석함이 확 와닿았다. 짧은 문장이지만 관점의 전환을 줄 수 있는 한방이 있는 문장이다. 즉 기획은 발상이 아닌 연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대박 난 기획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보면, 일반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인 참가자들의 무대를 전문 가수가 평가하는 구도였다. 여기서 나가수의 기획자는 무대와 객석을 바꾸는 역할 전이를 일으켜 일반인이 가수를 평가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가수도 일반인처럼 긴장하고 설레고 좌절하고 노력하는 모습과 일반인도 냉정하고 날카롭게 우열을 가려내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재미를 줄 수 있었다. 최대한 닮지 않은 것에서 최대한 닮은 것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S코드의 솔루션이다.

Epilogue

 사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실제 내 업무 스킬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또 다른 사고와 관점을 배웠고, 이후에 있을 모든 기획 작업에 이러한 관점과 사고과정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의 현상과 사실, 본질을 나누어 파악할 것이고, 새로운 무언가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연상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결책으로 찾으려 할 것이다. 물론 결과야 어떨지 현재로선 판단할 수 없지만, 기획의 정의가 무엇이고, 문제의 3형제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기쁘다. 기획업무 뿐만 아니라 내 인생 전반에도 2형식을 대입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무엇보다 저자가 기획이라는 과정을 대하는 태도의 순수함에서 나는 많은 걸 느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갖고 그에 비롯된 자부심에서 일에 대한 행복이 충족되는 것 같았다.
이 책 한권으로 인해 앞으로 내 삶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만 같아 설레인다.